결함투성이 건물을 받아 든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은 계약을 무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법은 하자를 근거로 한 해제를 정면으로 허용하면서도, 같은 조문의 뒷문장에서 건축물을 그 대상에서 빼 두었습니다. 문제는 이 단서를 계약 전체가 잠긴 것으로 오해하는 데서 생깁니다. 단서가 정확히 무엇을 잠그고 무엇을 열어 두었는지, 그리고 잠긴 문 옆에 어떤 문이 남아 있는지를 따져 보겠습니다.
단서가 잠그는 문은 하나뿐이다
제668조는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 문장은 완성된 목적물의 하자로 계약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된 도급인에게 해제권을 줍니다. 뒷문장은 건물이나 그 밖의 토지 공작물은 예외라고 못 박습니다.
여기서 읽어야 할 것은 예외의 범위입니다. 잠기는 것은 이 조문이 만들어 낸 해제권, 즉 하자를 사유로 삼는 해제 하나입니다. 계약을 끝낼 수 있는 통로가 민법에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 구별이 자주 무너집니다. 건물 공사는 해제가 안 된다는 말만 듣고, 공정이 몇 달째 멈춰 있는데도 통지 한 장 보내지 않은 채 기다리는 경우를 봅니다. 잠긴 문 앞에만 서 있다가 시간을 잃는 셈입니다.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부터가 아닌가
다음 질문은 경계입니다. 단서에 걸리려면 그 일의 결과물이 토지에 정착한 공작물이어야 합니다.
주택과 상가, 창고 같은 건축물은 다툴 것이 없습니다. 담장과 옹벽, 지하 저수조, 교량, 포장 도로처럼 땅에 붙어 있는 구조물도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반대로 결과물이 땅에서 떨어져 나오는 일이라면 단서가 작동할 자리가 없습니다.
경계에 걸친 공사가 실제 분쟁을 만듭니다. 기존 건물의 내부를 뜯어고치는 공사, 기계 설비를 들여놓는 공사,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공사가 그렇습니다. 판단의 축은 그 일의 결과가 건물 자체를 이루는지, 아니면 건물 안에 놓이는 별개의 물건인지에 있습니다.
| 일의 내용 | 단서가 걸리는지 |
|---|---|
| 신축·증축 공사 | 걸립니다. 전형적인 적용 대상입니다. |
| 옹벽·포장·지하 구조물 | 걸립니다. 토지에 정착한 공작물입니다. |
| 구조를 손대는 대수선 | 건물 자체를 이루므로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
| 가구·조명 등 설치 | 분리되는 물건이면 걸리지 않습니다. |
| 기계 제작·프로그램 개발 | 걸리지 않습니다. |
지시대로 지었다면 해제권이 서지도 않는다
단서와는 다른 방향에서 권리를 지우는 조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669조는 앞의 두 조문이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이 제공한 재료의 성질이나 도급인의 지시에서 비롯된 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앞의 두 조문에는 제668조가 들어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해제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건물이 아닌 목적물이라 단서를 피해 갔더라도 여기서 다시 막히는 구조입니다.
물론 조문은 한 번 더 뒤집힙니다. 시공사가 그 부적당함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았다면 면책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재를 지정한 발주자 쪽에서는 시공사가 위험을 인식했는지를 보여 줄 자료를, 시공사 쪽에서는 사전에 문제를 통지했다는 기록을 각각 붙들게 됩니다.
주의
도급인이 자재만 골라 준 것과 시공 방법까지 지정한 것은 무게가 다릅니다. 브랜드만 지정했을 뿐 시공 방식은 전적으로 시공사가 정했다면 지시로 보기 어렵습니다. 지정 범위를 문서로 남겨 두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 상대의 말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늦어지거나 불가능해진 공사는 다른 조문이 다룬다
이제 잠기지 않은 문들을 봅니다. 하자가 아니라 이행 자체가 문제라면 적용될 조문이 달라집니다.
공기를 지키지 못한 경우는 이행지체의 영역이고, 제544조가 기간을 정한 최고를 거쳐 해제하도록 길을 내고 있습니다. 특정 시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라면 제545조가 더 강합니다. 일정한 시일이나 기간 안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경우에는 최고 없이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기 때문입니다.
공사가 아예 불가능해졌다면 제546조가 작동합니다. 채무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가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시공사가 등록을 잃었거나 현장을 비우고 연락이 끊긴 사안이 여기에 닿습니다.
세 조문은 모두 하자와 무관합니다. 건물 공사라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적어 둔 해제 사유는 살아 있다
법이 정한 것 말고 당사자가 만들어 둔 통로도 있습니다. 제543조 제1항은 계약이나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해제권이 있는 때 그 해제를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고 정합니다. 계약서에 적어 둔 해제 조항이 여기서 힘을 얻습니다.
공사 중단이 며칠 이상 계속될 때, 하도급 대금이 연체되어 현장이 멈출 때, 안전 관리에 중대한 위반이 있을 때를 해제 사유로 미리 적어 두는 방식이 실무에서 널리 쓰입니다. 같은 조 제2항은 그 의사표시를 철회하지 못한다고 하므로, 통지를 보내기 전에 결론을 정해 두어야 합니다.
당사자가 여럿이라면 한 가지를 더 확인해야 합니다. 제547조 제1항은 일방이나 쌍방이 여러 사람인 경우 해제를 그 전원으로부터 또는 전원에 대하여 하도록 정합니다. 공동 건축주가 둘인데 한 사람 이름으로만 통지를 보내면 효력을 다투게 됩니다.
통지서 한 장에서 갈리는 것들
해제를 결정했다면 문서의 형식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어떤 사유로 어떤 권리를 행사하는지가 드러나지 않으면 상대가 그 통지의 효력부터 다투기 때문입니다.
- 하자가 아닌 지체나 불능을 사유로 삼는다면 그 사실을 앞머리에 적습니다.
- 기간을 정해 이행을 촉구한 문서를 먼저 보내고 도달 자료를 남깁니다.
- 계약서의 해제 조항을 근거로 삼는다면 조항 번호를 인용합니다.
- 당사자가 여럿이면 전원의 이름으로, 전원에게 보냅니다.
- 손해배상을 함께 구한다는 뜻을 같은 문서에 적어 둡니다.
마지막 항목은 제551조에서 나옵니다. 계약의 해지나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조문이 직접 적어 두었습니다.
확인할 것
· 문제의 원인이 하자인지 지체인지 불능인지
· 결과물이 토지에 정착한 공작물에 해당하는지
· 자재와 공법을 누가 정했는지 보여 주는 문서
· 계약서에 별도의 해제 조항이 있는지
· 당사자가 여러 명인지, 대리권이 있는지
정리
제668조의 단서는 건축 도급에서 하자를 사유로 한 해제만을 막습니다. 계약을 끝내는 모든 길이 닫힌 것이 아니라, 여러 통로 가운데 하나가 닫힌 것입니다.
그래서 첫 작업은 원인을 가리는 일입니다. 결과물에 결함이 있는 상황이라면 단서에 걸리지만, 공사가 늦거나 멈추었거나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 지체와 불능에 관한 조문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계약서에 스스로 만들어 둔 해제 사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재료나 지시가 도급인에게서 나온 경우에는 건물인지와 무관하게 해제권이 서지 않으므로, 지정의 범위를 보여 주는 문서가 승부를 가릅니다. 통지는 철회할 수 없고 당사자가 여럿이면 전원을 거쳐야 하므로, 보내기 전에 변호사와 함께 문안을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543조, 제544조, 제545조, 제546조, 제547조, 제551조, 제668조, 제669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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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건물 하자가 심해도 계약을 끝낼 방법이 아예 없나요?
하자를 사유로 한 해제만 막혀 있을 뿐입니다. 공사가 기한을 넘겼거나 시공사가 현장을 비워 이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 지체와 불능에 관한 조문으로 해제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도 단서에 걸리나요?
결과물이 건물 자체를 이루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구조를 손대는 공사라면 걸릴 가능성이 크고, 분리해서 떼어 낼 수 있는 가구나 설비 설치라면 단서가 작동할 자리가 없습니다.
제가 지정한 자재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떻게 되나요?
제669조에 따라 담보책임 규정 자체가 적용되지 않아 해제권도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시공사가 그 자재의 부적당함을 알고도 알려 주지 않았다면 면책되지 않으므로 당시 협의 문서를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해제 통지를 보냈다가 마음이 바뀌면 되돌릴 수 있습니까?
제543조 제2항이 해제의 의사표시를 철회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어 일방적으로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상대와 새로 합의하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으므로 통지 전에 결론을 굳히시는 편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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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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