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돈을 한 번에 다 갚지 못하고 조금씩 넣는 일이 훨씬 흔합니다. 이때 그 돈이 어느 자리에 가서 붙느냐가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원금이 줄어야 이자가 덜 붙고, 담보가 걸린 채무가 먼저 지워져야 집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법은 이 자리 배정을 당사자에게 맡겨 두되,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법이 대신 정하도록 짜 놓았습니다. 누가 먼저 고를 수 있는지, 침묵하면 어떤 차례가 돌아가는지, 이자와 원금 사이에는 어떤 칸막이가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어느 빚에 붙느냐가 왜 중요한가
같은 사람에게 여러 건의 빚을 지고 있는 경우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는 담보 없는 외상이고, 다른 하나는 집에 근저당이 잡힌 대출이며, 또 하나는 연대보증인이 서 준 채무입니다.
넣은 돈이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남는 그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담보 있는 쪽이 먼저 지워지면 부동산의 부담이 줄고, 보증인이 있는 쪽이 지워지면 그 사람에게 갈 청구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돈을 넣는 쪽과 받는 쪽의 이해가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민법이 이 문제를 세 개의 조문에 나누어 담아 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순서를 정하는 첫 권한은 돈을 내는 쪽에 있습니다. 제476조 제1항은 같은 종류를 목적으로 한 여러 개의 채무를 지고 있는데 낸 돈이 전부를 없애지 못할 때, 변제자가 그 당시 어느 채무에 붙일지를 지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점입니다. 돈을 보낼 그 자리에서 밝혀야 하고, 몇 달 뒤에 마음이 바뀌었다며 다시 고르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변제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권한이 넘어갑니다. 같은 조 제2항은 받는 쪽이 그 당시 어느 채무에 붙일지 정할 수 있게 하되, 낸 사람이 즉시 이의를 하면 그 지정이 힘을 잃도록 했습니다. 제3항은 이 지정이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써 이루어진다고 정하므로, 속으로만 생각한 배정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지정은 어떻게 남기나
계좌이체라면 받는 사람 통장에 찍히는 적요란에 대상을 적어 넣는 방법이 가장 간단합니다. 금액이 크거나 채무가 여러 건이면 이체 직전에 문자나 메일로 어느 건에 넣는 것인지 밝히고 발송 기록을 보관하십시오. 자동이체로 매달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처음 약정서에 배정 순서를 못 박아 두는 편이 낫습니다.
아무도 정하지 않으면 어떤 차례가 되나
양쪽 다 침묵한 경우를 위해 제477조가 네 단계의 사다리를 놓았습니다. 앞 단계에서 갈리면 거기서 끝나고, 갈리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내려갑니다.
| 단계 | 제477조가 정한 기준 |
|---|---|
| 1호 | 갚을 때가 이미 된 빚과 아직 오지 않은 빚이 섞여 있으면, 때가 된 쪽에 붙습니다. |
| 2호 | 전부 때가 되었거나 전부 오지 않았다면, 갚는 사람에게 이익이 더 큰 쪽에 붙습니다. |
| 3호 | 이익이 같다면, 먼저 때가 왔거나 먼저 오게 될 쪽에 붙습니다. |
| 4호 | 앞의 두 기준이 같다면, 각 채무액의 비율대로 나누어 붙습니다. |
2호의 변제이익이 무엇인지가 실제 다툼의 중심입니다. 이자가 높은 빚, 담보가 걸린 빚, 보증인이 딸린 빚 가운데 어느 것을 지우는 편이 갚는 사람에게 유리한지를 사안마다 따지게 됩니다.
이자와 원금 사이에는 어떤 칸막이가 있나
여기서 많은 분이 오해합니다. 제479조 제1항은 비용과 이자를 함께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낸 돈이 전부를 없애지 못하면 비용, 이자, 원본의 순서로 붙이도록 정합니다. 원금부터 줄이고 싶다는 바람과는 정반대입니다.
몇 년째 넣고 있는데 원금이 그대로인 이유가 대개 이 조문에 있습니다.
조문의 생김새도 눈여겨보십시오. 제476조에는 당사자가 골라 정하는 규정이 붙어 있지만, 제479조에는 그런 지정 규정이 따로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제2항은 이 경우에 제477조를 준용한다고만 덧붙였습니다.
결국 순서를 바꾸고 싶다면 상대와 따로 합의해 문서로 남기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주의
연체가 길어진 대출에 목돈을 넣으면서 원금이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계산하면 어긋납니다. 밀린 이자와 집행에 든 비용이 먼저 채워지고 남은 금액만 원금에 닿기 때문입니다. 입금 전에 상대에게 비용, 이자, 원금으로 나눈 정산 내역을 요구해 숫자를 맞춰 보시고, 그 문서를 받아 보관하십시오.
한 건의 빚을 여러 번에 나눠 낼 때는
채무가 하나뿐이어도 문제가 생깁니다. 할부처럼 여러 번에 걸쳐 내기로 한 경우입니다.
제478조가 이를 다룹니다. 하나의 채무에 여러 번의 급여가 필요한 경우에 낸 돈이 전부를 없애지 못하면 앞의 두 조문을 준용합니다. 즉 제476조의 지정과 제477조의 차례가 회차 사이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세 번째 회차에 돈을 넣으면서 밀린 첫 회차가 아니라 이번 달분에 넣는 것이라고 밝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한이익 상실 조항이 몇 회차 연체를 기준으로 걸려 있는 계약이라면 이 지정 하나가 결과를 바꿉니다.
입금할 때 무엇을 남겨 두어야 하나
다툼은 거의 언제나 기록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돈을 보내기 전에 아래를 챙기십시오.
- 상대에게 받을 금액의 내역서를 요청해 비용, 이자, 원금을 분리합니다.
- 채무가 여러 건이면 계약일과 이율, 담보와 보증인의 유무를 표로 만듭니다.
- 어느 건에 넣을지 정하고 이체 직전에 서면으로 통지합니다.
- 이체 적요란에 대상 채무를 알아볼 수 있게 적습니다.
- 입금 후 상대가 보내온 영수증의 배정 내역을 확인합니다.
- 내역이 다르면 지체 없이 이의를 표시하고 그 기록을 남깁니다.
여섯 번째를 미루면 곤란해집니다. 제476조 제2항의 이의는 즉시 해야 힘을 갖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와 함께 내역을 검토하면 배정이 잘못된 구간을 찾아내기가 수월합니다.
정리
낸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당사자의 말 한마디로 정해집니다. 제476조는 그 말을 할 권한을 먼저 갚는 사람에게 주고, 그가 침묵하면 받는 사람에게 넘기며, 그때도 즉시 이의를 하면 지정이 무너집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으면 제477조의 네 단계가 차례로 적용됩니다.
다만 비용과 이자가 끼어 있는 사안에서는 제479조가 먼저 작동해 비용, 이자, 원본의 차례를 고정합니다. 제476조와 달리 이 조문에는 지정 규정이 붙어 있지 않으므로, 원금부터 줄이려면 별도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여러 건을 오래 갚아 오셨다면 지금까지의 배정이 조문대로였는지 한 번 맞춰 볼 가치가 있으니, 내역서를 들고 변호사와 상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476조, 제477조, 제478조, 제479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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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돈을 보낸 뒤에 어느 빚에 넣을지 다시 고를 수 있습니까?
제476조 제1항은 변제할 당시에 지정하도록 하고 있어 나중에 바꾸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체 직전에 서면으로 밝히고 적요란에도 적어 두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상대가 제 뜻과 다르게 배정해 통보했습니다.
받는 쪽의 지정은 제476조 제2항에 따른 것이지만, 낸 사람이 즉시 이의를 하면 효력을 잃습니다. 통지를 받은 날 바로 이의의 뜻을 문자나 내용증명으로 남기시고 발송 기록을 보관하십시오.
목돈을 넣었는데 원금이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제479조 제1항이 비용과 이자를 원본보다 앞에 두고 있어 생기는 결과입니다. 밀린 이자와 집행 비용이 먼저 채워지므로, 입금 전에 세 항목으로 나눈 정산 내역을 받아 확인하셔야 합니다.
아무 말 없이 입금하면 어떤 순서로 처리됩니까?
제477조가 네 단계로 정합니다. 이행기가 도래한 채무, 변제이익이 많은 채무, 이행기가 먼저 온 채무의 순으로 내려가고 그래도 같으면 각 채무액에 비례해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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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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