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집행이라고 하면 집행관이 문을 두드리거나 통장이 잠기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판결을 받고도 집행관을 부르지 않고, 압류도 경매도 없이 목적을 이루는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상대에게 어떤 의사를 표시하라고 명한 판결이 그렇습니다. 민사집행법 제263조는 그 판결이 확정되면 상대가 이미 말한 것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집행 없는 집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겠습니다.
강제할 필요가 없는 의무
세상의 의무는 성질에 따라 집행 방법이 갈립니다.
돈을 주라는 의무는 재산을 팔아 그 값에서 받아 내면 됩니다. 물건을 넘기라는 의무는 집행관이 빼앗아 건네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 의무입니다. 소유권을 넘긴다는 뜻을 밝혀라, 채권양도를 승낙하라, 등기신청에 협력하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의무는 몸을 붙들어도 끌어낼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입을 열게 하는 집행은 없습니다.
그래서 법이 방향을 바꿨습니다. 억지로 말하게 하는 대신 말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방식입니다.
의사표시의무
일정한 내용의 의사를 표시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채무입니다.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판결의 주문이 대표적입니다. 등기소에 함께 가서 신청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요구가 그 실질입니다.
조문이 열어 둔 두 갈래
제263조 제1항은 두 경우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하나는 채무자가 권리관계의 성립을 인낙한 때이고, 이때는 그 조서로 인낙하거나 의사를 진술한 것으로 봅니다. 다른 하나는 의사의 진술을 명한 판결이 확정된 때이며, 이 경우에는 그 판결로 같은 효과가 생깁니다.
주목할 표현은 본다입니다. 추정이 아니라 간주입니다. 상대가 끝까지 거부하고 있어도 법률상으로는 이미 진술이 있었던 것으로 다루어지고, 그 반대를 증명해 뒤집을 수 없습니다.
효력이 생기는 시점도 명확합니다. 조서가 작성된 때, 그리고 판결이 확정된 때입니다.
그렇다면 등기는 누가 신청하나
여기서 부동산등기법이 이어받습니다.
등기는 원칙적으로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제23조 제1항은 등기권리자와 등기의무자가 공동으로 신청하도록 정합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판결을 받았다면 이 원칙이 물러섭니다. 같은 조 제4항은 등기절차의 이행 또는 인수를 명하는 판결에 의한 등기를 승소한 등기권리자 또는 등기의무자가 단독으로 신청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공유물을 분할하는 판결에 의한 등기도 한쪽이 혼자 신청합니다.
절차는 이렇게 흐릅니다.
- 판결이 확정되면 확정증명원을 발급받습니다.
- 판결정본과 확정증명원을 등기신청서에 붙입니다.
- 등록면허세와 취득세를 납부하고 영수필확인서를 갖춥니다.
- 관할 등기소에 단독으로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집행문은 이 흐름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확정된 판결 자체가 진술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반대의무가 붙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판결이 주문 한 줄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대금 잔액을 받음과 동시에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식의 주문이 흔합니다. 매수인이 돈을 마저 내야 매도인이 등기에 협력한다는 구조입니다. 이때는 판결이 확정되어도 곧바로 진술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제263조 제2항이 이 상황을 다룹니다. 반대의무가 이행된 뒤에 권리관계의 성립을 인낙하거나 의사를 진술할 것인 경우에는 제30조와 제32조의 규정에 따라 집행문을 내어 준 때에 그 효력이 생깁니다.
제30조 제2항은 조건이 붙은 판결의 집행문에 관하여, 조건이 성취되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채권자가 제출하여야만 집행문을 내어 준다고 정합니다. 제32조 제1항은 그런 경우의 집행문이 재판장의 명령이 있어야 나온다고 덧붙였고, 제2항은 명령에 앞서 서면이나 말로 채무자를 심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주의
동시이행 주문을 받은 사건에서 잔금을 치르지 않은 채 등기소에 가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잔금 지급을 증명하는 자료를 갖추어 집행문부여를 먼저 구하십시오. 상대가 수령을 거부한다면 변제공탁을 한 뒤 공탁서로 증명하는 방법을 검토하게 됩니다.
가집행선고를 붙일 수 없는 이유
돈을 주라는 판결에는 흔히 가집행선고가 붙습니다. 항소심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집행하라는 허가입니다.
의사표시를 명하는 판결은 다릅니다. 제263조 제1항이 효력의 발생 시점을 확정된 때로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확정되지 않은 판결로는 진술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니, 미리 집행하라는 선고를 붙여 얻을 것이 없습니다.
실무에서 이 점이 시간으로 나타납니다. 1심에서 이겼더라도 상대가 항소하면 등기를 옮길 수 없습니다. 상고심까지 간다면 몇 해가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부동산이 제삼자에게 넘어가면 판결은 종이가 됩니다. 소를 제기하면서 처분금지가처분을 함께 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어긋나는 지점
세 가지가 반복됩니다.
첫째는 주문의 특정입니다. 어느 부동산의 어느 지분에 관하여 어떤 원인으로 언제 자 등기를 이행하라는지가 정확히 적혀 있어야 합니다. 등기관은 주문과 등기부를 대조해 심사하므로 표시가 한 글자라도 어긋나면 각하됩니다.
둘째는 확정의 증명입니다. 판결정본만 들고 가면 부족합니다. 같은 법원에서 확정증명원을 따로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상대방의 표시입니다. 소송 중에 등기명의인이 바뀌었다면 그 판결로는 등기가 되지 않습니다. 소를 낼 때 등기부를 확인하고 가처분으로 명의를 묶어 두는 일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정리
제263조는 집행의 모습을 바꾼 조문입니다. 강제로 끌어내는 대신 확정된 판결에 진술의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단순한 이행 주문이라면 확정만으로 끝나고, 단독으로 등기를 신청하면 됩니다. 반대의무가 붙어 있다면 그 이행을 증명해 집행문을 받아야 비로소 효력이 생깁니다. 확정을 기다려야 하는 구조이므로 그 기간 동안 목적물을 지키는 보전처분이 함께 필요합니다.
주문의 표현 한 줄이 등기 가능 여부를 가르는 영역입니다. 소장을 쓰는 단계에서 등기부와 청구취지를 나란히 놓고 변호사와 문구를 다듬으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사집행법 제30조, 제32조, 제263조 · 부동산등기법 제23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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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판결이 확정되면 상대를 등기소에 데려가야 하나요?
데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제263조 제1항에 따라 진술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부동산등기법 제23조 제4항이 승소한 쪽의 단독신청을 허용합니다. 판결정본과 확정증명원을 갖추어 관할 등기소에 가시면 됩니다.
잔금을 받음과 동시에 이행하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제263조 제2항의 경우이므로 확정만으로는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잔금 지급을 증명하는 자료를 내고 집행문을 부여받아야 하며, 그 집행문은 제32조 제1항에 따라 재판장의 명령을 거쳐 나옵니다.
1심에서 이겼는데 바로 등기를 옮길 수 있나요?
어렵습니다. 조문이 판결의 확정을 효력 발생 요건으로 삼고 있어 상소심이 남아 있으면 진술이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기간에 목적물이 처분되지 않도록 보전처분을 검토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소송 중에 상대가 부동산을 팔아 버렸습니다.
등기명의인이 달라지면 기존 판결로는 등기를 넘길 수 없습니다. 제소 단계에서 처분금지가처분을 함께 구해 두는 것이 정석이며, 이미 넘어갔다면 현재 명의인을 상대로 한 방법을 따로 따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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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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