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사업 자금이 급하다고 해서 형이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아 주었습니다. 서류에 서명하면서 속으로는 어차피 동생이 갚을 돈이지 내 빚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뒤 동생의 사업이 기울자 은행은 형에게 상환을 요구합니다. 형은 처음부터 갚을 뜻이 없었으니 그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통할까요. 민법은 말과 속마음이 다른 경우를 두고 원칙과 예외를 한 조문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 조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경우에 예외가 열리는지, 비슷해 보이는 다른 조문과 무엇이 다른지를 정리했습니다.
속으로는 아니었다는 말이 왜 통하지 않나
민법 제107조 제1항 본문이 답을 줍니다.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 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습니다.
표의자란 의사표시를 한 사람입니다.
자기 말이 속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 했다면, 그 말은 겉으로 드러난 대로 효력을 가집니다. 받은 쪽은 상대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드러난 말을 믿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법은 그 믿음을 지켜 주는 쪽을 택했습니다.
앞의 형은 서명할 때 자기가 채무자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도 서명했습니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든 은행에 대한 채무는 그대로 성립합니다. 이 상태를 비진의 의사표시라고 부릅니다.
진의
제107조가 말하는 진의는 표의자가 그 의사표시를 하려고 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 결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고 싶어서 했는지와는 다른 층의 문제입니다. 내키지 않지만 서명하기로 마음먹고 서명했다면 서명한다는 진의는 있는 것이고, 진의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상대가 알았다면 결과가 뒤집힌다
같은 항의 단서가 예외를 엽니다.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합니다.
두 갈래입니다.
실제로 알았던 경우와, 몰랐지만 조금만 주의했으면 알 수 있었던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든 상대방을 보호할 이유가 사라지므로 의사표시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이 됩니다. 취소가 아니라 무효입니다. 따로 취소한다는 통지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기간 제한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툼은 상대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로 모입니다. 대출 사례라면 은행 직원이 형과 동생 사이의 사정을 들었는지, 서류에 그런 정황이 드러나 있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은행이 몰랐고 알 수도 없었다면 형의 채무는 그대로입니다.
무효가 되어도 제3자 앞에서는 다르다
제107조 제2항은 한 겹을 더 둡니다. 비진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알고 있어서 무효가 된 경우라도, 그 뒤에 새로 끼어든 사람이 사정을 모르고 거래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진의 없이 넘긴 물건을 상대방이 다시 제3자에게 팔았고 그 제3자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표의자는 제3자에게 물건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손해를 묻는 길만 남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이 조문이 등장하나
제107조가 문제되는 자리는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 마음에 없는 사직서를 냈는데 회사가 그대로 수리한 경우
- 농담처럼 물건을 주겠다고 했는데 상대가 진지하게 받아들인 경우
- 명의만 빌려 준다는 생각으로 계약서에 서명한 경우
- 체면 때문에 보증을 서면서 속으로는 책임질 생각이 없었던 경우
공통점이 있습니다. 표의자는 속마음을 들어 벗어나려 하고, 상대방은 드러난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조문은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하나로 승부를 가립니다. 사직서라면 회사가 그 사직서가 진의가 아님을 알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명의 대여라면 상대가 명의만 빌리는 것임을 알고 있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속마음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상대가 알았다는 정황, 즉 대화 기록이나 서류의 문구, 거래의 흐름이 열쇠가 됩니다.
비슷한 조문 셋과 어디서 갈리나
제107조 바로 뒤에 모양이 닮은 조문이 셋 이어집니다. 겉으로는 모두 말과 속이 어긋난 경우를 다루지만 효과가 다릅니다.
| 조문 | 상황 | 효과 | 선의의 제3자 |
|---|---|---|---|
| 제107조 | 혼자서 진의 아님을 알고 표시 | 원칙 유효, 상대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면 무효 | 대항 못 함 |
| 제108조 | 상대방과 짜고 거짓 표시 | 무효 | 대항 못 함 |
| 제109조 |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 | 취소 가능, 중대한 과실이면 취소 못 함 | 대항 못 함 |
| 제110조 | 사기나 강박으로 표시 | 취소 가능 | 대항 못 함 |
제107조와 제108조의 차이는 상대방이 함께 꾸몄는지입니다. 혼자 속마음을 숨겼으면 제107조, 둘이 입을 맞췄으면 제108조입니다. 제109조의 착오는 표의자가 자기 말이 속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여서 알고 한 제107조와 반대편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알았다는 것은 누가 증명하나
제107조 제1항은 본문에서 유효를 원칙으로 두고 단서에서 예외를 적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예외를 주장하는 쪽이 그 사정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무효라고 주장하는 표의자가 증명합니다.
증명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자기 표시가 진의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둘째가 훨씬 어렵습니다. 상대의 인식은 보통 정황으로 추론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확인할 것
· 서명이나 약속 전후에 상대와 주고받은 메시지와 통화 내용
· 계약서에 실제 사정이 드러나는 문구가 있는지
· 상대가 같은 거래를 반복해 사정을 알 만한 위치였는지
· 돈이나 물건이 실제로 누구에게 오갔는지
· 뒤에 제3자가 끼어들었다면 그 사람이 사정을 알았는지
정리
민법 제107조는 속마음과 다른 줄 알면서 한 의사표시라도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정합니다. 상대방이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만 무효가 되고, 그 무효도 선의의 제3자에게는 주장하지 못합니다.
명의를 빌려 준 대출, 마음에 없던 사직서, 체면으로 선 보증 모두 이 조문 위에 놓입니다. 상대방이 알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쪽은 표의자이고, 그 증명은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인식을 보여 주는 정황으로 합니다.
서명 전이라면 속마음이 아니라 서류에 적힌 대로 책임지게 된다는 전제로 결정하시고, 이미 다툼이 생겼다면 상대가 사정을 알았다는 자료를 모아 민사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07조, 제108조, 제109조, 제1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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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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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동생 부탁으로 제 이름으로 대출받아 주었습니다. 저는 갚을 생각이 없었는데 무효 아닌가요?
제107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진의가 아님을 알고 한 의사표시도 유효합니다. 은행이 명의만 빌려 주는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단서의 무효가 열리고, 그 증명은 대출을 받은 쪽이 해야 합니다.
홧김에 낸 사직서를 회사가 바로 수리했습니다. 되돌릴 수 있나요?
사직의 의사표시도 제107조의 적용을 받습니다. 회사가 그 사직서가 진의가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사정이 있으면 무효를 주장할 수 있고, 그런 사정이 없으면 수리된 대로 효력이 생깁니다.
상대가 제 속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취소 통지를 해야 하나요?
제107조 제1항 단서의 효과는 취소가 아니라 무효입니다. 별도의 취소 통지나 기간 제한 없이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제107조와 제108조는 어떻게 구별하나요?
혼자서 속마음을 숨기고 표시했으면 제107조이고, 상대방과 짜고 거짓 표시를 만들었으면 제108조의 통정허위표시입니다. 제108조는 상대방의 인식을 따질 필요 없이 바로 무효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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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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