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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분석/최신동향2026년 9월 19일조회 6

인도 전에 없어진 물건, 값은 누가 무나

계약서에 도장은 찍었는데 물건이 넘어가기 전에 불이 나거나 물에 잠기는 일이 있습니다.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손을 댄 적이 없는데 목적물만 사라진 것입니다.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대금은 그대로 오가야 하는가. 민법은 이 문제를 위험부담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다루면서, 누구의 사정으로 없어졌느냐에 따라 결론을 세 갈래로 갈라 두었습니다. 그 갈림길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물건만 사라졌다면

기본 규정은 제537조입니다. 서로 의무를 지는 계약에서 넘겨야 할 급부가 양쪽 누구의 탓도 아닌 사정으로 사라지면, 그쪽은 상대에게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못합니다.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물건을 넘길 수 없게 된 사람이 대금도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없어진 물건의 손실을 파는 쪽이 떠안는 구조이며, 그래서 채무자위험부담주의라고 부릅니다.

이미 계약금이나 중도금이 건너갔다면 그대로 둘 이유가 없습니다. 받을 근거가 사라졌으므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사는 쪽에 책임이 있으면 무엇이 뒤집히나

제538조 제1항 앞부분이 방향을 반대로 돌립니다. 급부가 사라진 원인이 받을 쪽의 귀책사유에 있다면, 넘겨야 했던 사람은 반대급부를 그대로 요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매수인이 인도 전에 창고에 들어가 기계를 함부로 손대다 망가뜨렸다면, 매도인은 기계를 넘길 수 없게 되었어도 대금은 청구합니다. 자기가 만든 사정으로 상대의 이행을 막아 놓고 대금까지 면한다면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귀책사유란 고의뿐 아니라 부주의까지 아우릅니다. 지시를 잘못 내려 엉뚱한 곳으로 운송되게 한 경우처럼, 직접 손대지 않은 행위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받기를 미루던 사이에 없어진 경우는 어떻게 되나

세 번째 갈래가 실무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집니다. 제538조 제1항 뒷부분은 수령지체가 이어지던 중 우연한 사정으로 급부가 사라진 경우에도 같은 결론을 내도록 합니다.

그러려면 수령지체가 먼저 성립해 있어야 합니다. 제400조는 채권자가 이행을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아니한 때 이행의 제공이 있는 때로부터 지체책임을 지웁니다. 그 제공이 무엇인지는 제460조가 정해 두었습니다. 원칙은 채무 내용에 맞춘 현실제공이고, 상대가 미리 수령을 거절했다면 준비를 마쳤다고 알리고 수령을 최고하면 됩니다.

이 제공을 해 두면 제461조에 따라 그때부터 채무불이행의 책임을 면합니다. 나아가 제401조는 수령지체 중이라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불이행으로 인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고, 늘어난 보관비는 제403조가 채권자 부담으로 돌립니다.

날짜만 지났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공의 흔적을 남겨 두지 않으면 이 조문들이 모두 작동하지 않습니다.

확인할 것
· 인도 일자와 장소를 특정해 통지한 문서가 있는지
· 상대가 수령을 거절한 문자나 통화 기록이 남아 있는지
· 물건을 언제든 넘길 수 있는 상태로 두었다는 사진과 보관 기록이 있는지
· 멸실 당시의 원인을 보여 줄 소방서 확인서나 사고 기록을 확보했는지

면한 채무에서 남은 이익은 어떻게 처리하나

대금을 그대로 받는다고 해서 파는 쪽이 이중으로 득을 보아서는 곤란합니다. 제538조 제2항이 그 지점을 막아 둡니다. 채무자가 자기 채무를 면함으로써 이익을 얻은 때에는 그 이익을 채권자에게 상환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여기에 들어갈까요. 넘기지 않게 되어 굳은 운송비와 포장비, 설치 인건비처럼 지출하지 않고 남은 돈이 전형이고, 멸실로 나온 보험금도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이 상환분은 대금에서 자동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사는 쪽이 금액과 근거를 짚어 주장해야 반영됩니다.

세 갈래를 한자리에 놓으면

사안을 받아 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원인을 어느 칸에 넣을지 정하는 것입니다.

멸실의 원인근거 조문대금은 어떻게 되나
양쪽 누구의 탓도 아님제537조청구하지 못하고, 이미 받은 것은 반환합니다.
사는 쪽의 사정으로 불능제538조 제1항 앞부분전액 청구하되 면한 이익은 돌려줍니다.
수령지체 중 우연한 멸실제538조 제1항 뒷부분같은 방식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파는 쪽의 사정으로 불능제390조 · 제546조위험부담이 아니라 배상과 해제의 문제가 됩니다.

마지막 줄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위험부담 규정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을 때를 위한 장치여서, 파는 쪽의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 무대가 바뀝니다.

해제와 손해배상은 어느 지점에서 갈리나

파는 쪽의 부주의로 물건이 없어졌다면 사는 쪽의 선택지가 늘어납니다. 제546조는 채무자에게 귀책사유가 있어 인도가 불가능해진 경우에 해제권을 주고, 제390조는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 없을 때 배상을 구할 수 있게 합니다.

둘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해제로 계약을 걷어 내고도 제551조에 따라 배상 청구는 남습니다. 제548조 제1항은 해제 시 원상회복 의무를 지우면서 반환할 금전에 받은 날부터의 이자를 붙이게 합니다.

반대로 위험부담 국면에서는 해제라는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대금 채무가 조문 자체로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계약서로 미리 정해 둘 수 있나

제537조와 제538조는 당사자가 달리 정하지 못하도록 막아 둔 규정이 아닙니다. 제105조는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와 관계없는 규정에 대하여 당사자가 다른 의사를 표시하면 그 의사에 따르도록 합니다.

그래서 실무 계약서에는 위험이 언제 옮겨 가는지를 적어 두는 조항이 들어갑니다. 정해 두는 방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인도 시점을 기준으로 위험이 이전한다고 명시합니다.
  2. 운송이 따르면 어느 지점을 인도로 볼지 함께 적습니다.
  3. 수령을 미룰 경우 그 시점부터 위험이 넘어간다는 문장을 넣습니다.
  4. 보험의 가입 주체와 보험금의 귀속을 정해 둡니다.
  5. 멸실 시 대금 정산과 기지급금 반환의 기준을 숫자로 적습니다.

다섯 번째를 빼놓지 마십시오. 앞의 네 줄만 있으면 위험은 옮겨 가는데 정산 방법이 없어 다시 다툼이 붙습니다.

정리

물건이 넘어가기 전에 사라졌을 때 대금의 향방은 원인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면 제537조가 파는 쪽에 손실을 지우고, 사는 쪽의 사정이거나 수령을 미루던 중이었다면 제538조 제1항이 대금 청구를 살려 둡니다. 다만 면한 이익은 제538조 제2항으로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결국 승부는 조문이 아니라 기록에서 갈립니다. 이행의 제공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가 서류로 남아 있지 않으면 어느 칸에 들어갈지부터 정해지지 않습니다. 금액이 크거나 원인이 불분명한 사안이라면 자료를 정리한 뒤 변호사와 함께 청구의 방향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05조, 제390조, 제400조, 제401조, 제402조, 제403조, 제460조, 제461조, 제537조, 제538조, 제546조, 제548조, 제55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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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물건이 불에 탔는데 양쪽 다 책임이 없으면 계약금은 어떻게 되나요?

제537조가 적용되어 파는 쪽은 대금을 청구하지 못합니다. 받을 근거가 없어졌으므로 이미 건네받은 계약금은 돌려주어야 하며, 해제 의사표시를 따로 하지 않아도 대금 채무가 정리됩니다.

인도를 계속 미룬 매수인에게도 대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까?

제538조 제1항 뒷부분에 따라 수령지체 중에 우연히 멸실되었다면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400조의 지체가 성립하려면 제460조가 말하는 이행의 제공이 앞서 있어야 하므로, 인도 통지와 거절 기록을 남겨 두셔야 합니다.

대금을 다 받으면서 아낀 운송비까지 가져도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538조 제2항은 채무를 면하면서 얻은 이익을 상대에게 상환하도록 합니다. 지출하지 않게 된 운송비와 멸실로 받은 보험금이 여기에 들어가며, 사는 쪽이 금액과 근거를 들어 주장해야 반영됩니다.

파는 쪽의 관리 부실로 없어졌다면 무엇을 청구하나요?

위험부담이 아니라 채무불이행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제546조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제390조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으며, 제551조에 따라 해제를 하더라도 배상 청구는 함께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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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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