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을 지으려고 330제곱미터짜리 밭을 계약했습니다. 등기부를 떼 보니 소유자는 매도인의 아버지였지만, 매도인은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자기가 모든 걸 정리한다며 곧 증여 등기를 받아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계약금 3,000만 원에 중도금 5,000만 원까지 건넸는데, 잔금 날을 앞두고 아버지가 땅을 팔 생각이 없다며 등기를 거부했습니다. 남의 땅을 판 계약이 처음부터 무효인지, 아니면 산 사람이 해제하고 배상까지 받을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답은 계약 당시 무엇을 알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것이 아닌 물건을 판 계약도 유효한가
유효합니다.
의외로 들리지만 민법은 남의 권리를 파는 계약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매의 목적이 된 권리가 남에게 속해 있으면 매도인이 그 권리를 사들여서라도 매수인에게 넘겨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중고차 매매상이 아직 전 차주 명의로 남아 있는 차를 파는 거래도 이 틀 위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앞의 사례에서도 계약은 살아 있고, 매도인은 아버지에게서 땅을 넘겨받아 매수인에게 등기해 줄 의무를, 매수인은 잔금을 치를 의무를 집니다. 문제는 아버지가 끝내 거부해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다음입니다.
하나 구별할 것이 있습니다. 아들이 자기 이름으로 판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대리인이라며 계약했다면 이는 대리권 없는 대리의 문제가 되어, 아버지가 추인하지 않는 한 아버지에게 효력이 없고 아들이 이행이나 배상 책임을 지는 다른 규정으로 넘어갑니다. 계약서의 매도인 칸에 누구 이름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부터 확인하십시오.
넘겨받을 수 없게 되면 산 쪽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매도인이 권리를 취득해 넘겨줄 수 없게 되면 매수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 해제권에는 매수인이 선의였는지 악의였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등기부를 보고 아버지 땅인 줄 알고 계약했더라도 해제는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손해배상은 사정이 다릅니다. 민법은 매수인이 계약 당시 그 권리가 매도인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때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 계약할 때 산 사람은 | 계약 해제 | 손해배상 |
|---|---|---|
| 남의 것인 줄 몰랐다 (선의) | 할 수 있음 | 청구할 수 있음 |
| 남의 것인 줄 알았다 (악의) | 할 수 있음 | 이 조문으로는 청구할 수 없음 |
선의와 악의
법에서 선의는 어떤 사실을 몰랐다는 뜻이고, 악의는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착하다거나 나쁘다는 도덕적 평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그때, 파는 물건이 파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산 사람이 알았느냐만 봅니다.
앞의 사례의 매수인은 등기부로 소유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 조문만으로는 해제는 되지만 배상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받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제하면 양쪽 모두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의무를 지고, 돌려줄 돈에는 받은 날부터의 이자를 붙여야 합니다. 계약금 3,000만 원과 중도금 5,000만 원은 각각 건넨 날부터 이자를 더해 돌려받습니다.
알고 샀다면 배상은 아예 포기해야 하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담보책임 조문은 매도인에게 잘못이 없어도 지는 책임을 정한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매도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면 일반적인 채무불이행 책임을 따져 볼 여지가 있습니다.
핵심은 매도인이 무엇을 약속했느냐입니다. 계약서 특약에 "매도인은 잔금일까지 책임지고 소유권을 취득하여 이전한다"라거나 "이전하지 못하면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다"는 문구가 있다면, 매수인이 사정을 알았더라도 그 약속을 어긴 데 대한 배상을 구할 근거가 됩니다. 말로만 들은 약속이라면 문자 메시지나 녹음처럼 남은 기록을 모으십시오.
계약금 배액 배상 약정이 따로 있으면 그 금액이 손해배상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는 사람이 먼저 계약을 깰 수도 있나
있습니다. 이 점이 이 제도에서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매도인이 계약 당시 그 권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던 경우에는, 권리를 넘겨줄 수 없게 되면 매도인도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매수인이 선의였다면 매도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해제해야 하고, 매수인이 알고 샀다면 권리를 넘길 수 없다고 통지하는 것만으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상속 등기가 정리되지 않은 땅을 자기 몫인 줄 알고 판 경우처럼, 매도인 자신도 속사정을 몰랐던 거래에서 이 규정이 쓰입니다. 앞의 사례처럼 아버지 명의라는 걸 알면서 판 매도인은 이 방법을 쓸 수 없습니다.
일부만 남의 것이었다면 어떻게 달라지나
형제가 공동으로 상속한 땅을 한 사람이 통째로 팔았는데 다른 형제가 자기 지분 넘기기를 거절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때 매수인은 넘겨받지 못한 부분의 비율만큼 대금 감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1억 2,000만 원에 산 땅에서 2분의 1 지분을 받지 못했다면 6,000만 원이 감액의 기준이 되는 셈입니다. 남은 부분만으로는 사지 않았을 사정이라면 선의의 매수인은 계약 전부를 해제할 수 있고, 감액이나 해제와 함께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기간 제한이 붙습니다. 선의의 매수인은 그 사실을 안 날부터, 악의의 매수인은 계약한 날부터 1년 안에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전부가 남의 것인 경우의 해제에는 이런 조문상 기간이 없는 것과 대비됩니다.
지금 무엇부터 정리해야 하나
해제 통보 전에 모아 둘 것
· 계약서와 특약 문구 (특히 "책임지고 소유권을 넘긴다" 같은 약속)
· 계약 당시 등기사항증명서와 열람 일시
· 계약금, 중도금 이체 내역
· 진짜 소유자가 이전을 거절했다는 문자나 녹취
- 계약서의 매도인 명의와 대리 표시를 확인해 타인 권리 매매인지 무권대리인지 가른다.
- 진짜 소유자가 이전을 거절한 사실을 기록으로 확보한다.
- 잔금은 치르지 말고, 매도인에게 14일 정도 기한을 주어 이전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다.
- 기한이 지나면 해제 통지와 함께 계약금·중도금과 이자의 반환을 청구한다.
- 특약이나 약속 기록이 있으면 손해배상 청구를 함께 준비하고, 매도인 재산에 가압류를 검토한다.
정리
남의 물건을 판 매매도 계약으로서는 유효하고, 매도인은 그 권리를 구해 넘겨줄 의무를 집니다. 넘겨주지 못하면 매수인은 알았든 몰랐든 해제할 수 있지만, 이 조문에 따른 배상은 몰랐던 매수인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알고 샀다면 특약과 약속 기록이 배상의 열쇠입니다. 돌려받을 돈이 크거나 매도인이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면 해제 통지 전에 변호사와 함께 가압류와 청구 순서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30조, 제135조, 제390조, 제548조, 제569조, 제570조, 제571조, 제572조, 제573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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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등기부를 보지 않고 계약했는데, 그래도 알았다고 보나요?
이 조문은 계약 당시 실제로 알았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부동산 거래에서 등기부 확인은 기본이라 상대방은 알 수 있었다고 다툴 것이므로, 계약 경위와 매도인의 설명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잔금을 아직 안 냈는데 매도인이 잔금부터 달라고 합니다.
매도인이 소유권을 넘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잔금 지급을 미루고 이전 가능성부터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잔금은 등기 서류와 맞바꾸는 것이 원칙이므로 소유자 동의서나 이전 서류가 준비됐는지 먼저 요구하십시오.
해제하면 중개수수료도 돌려받을 수 있나요?
중개수수료는 중개사와의 별도 계약이라 해제만으로 자동 반환되지는 않습니다. 매도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 손해 항목으로 주장해 볼 수 있습니다.
진짜 소유자인 아버지에게 직접 넘겨 달라고 할 수 있나요?
아버지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매수인이 아버지에게 등기를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계약상 의무는 매도인인 아들에게 있으니 아들을 상대로 이전이나 해제, 배상을 청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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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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