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의 한 금속가공 업체가 폐업하는 공장에서 중고 프레스 한 대를 사기로 했습니다. 계약서에는 기계 사양과 총액, 계약금, 그리고 잔금 10월 30일이라는 한 줄만 적었습니다. 날짜가 다가오자 판 쪽에서 잔금을 먼저 계좌로 보내면 기계는 다음 주에 실어 주겠다고 합니다. 산 쪽은 기계를 보고 돈을 내겠다는 입장입니다. 계약서 대서료와 감정 비용을 누가 낼지도 말이 엇갈립니다. 민법은 이렇게 비어 있는 칸을 채우는 기본값을 두고 있습니다.
잔금 날짜만 적었다면 기계는 언제 넘겨야 하나
잔금과 같은 날로 봅니다.
민법 제585조는 매매 당사자 한쪽의 의무에 기한이 있으면 상대방의 의무에도 같은 기한이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산 쪽의 잔금 지급일만 적혀 있어도 판 쪽의 인도일 역시 그날로 읽힌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제568조 제2항이 더해집니다. 매도인의 권리 이전과 매수인의 대금 지급은 특별한 약정이나 관습이 없으면 동시에 이행하여야 합니다.
두 조문을 합치면 결론은 단순합니다. 10월 30일에 돈과 기계가 맞바뀌는 구조입니다. 잔금을 먼저 보내고 다음 주에 받는다는 제안은 이 기본값과 다른 새로운 조건이므로, 받아들일지는 산 쪽이 정할 문제입니다.
다만 추정은 반대 증거로 뒤집힙니다. 협상 과정의 문자나 이메일에 인도를 뒤로 미루기로 한 흔적이 있다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잔금은 어디서 치러야 하나
제586조가 답을 줍니다. 목적물을 넘겨받으면서 대금을 함께 치르는 경우에는 그 인도장소에서 지급하여야 합니다. 기계를 공장에서 넘겨받기로 했다면 돈도 그 공장에서 건네는 것이 원칙입니다.
인도장소마저 정하지 않았다면 한 단계 위의 일반 규정으로 올라갑니다. 제467조는 특정물의 인도는 채권이 성립할 당시 그 물건이 있던 곳에서, 그 밖의 변제는 채권자의 현주소에서 하도록 합니다. 영업에 관한 채무라면 채권자의 현영업소가 기준입니다.
| 약정 상태 | 기계를 넘기는 곳 | 잔금을 치르는 곳 |
|---|---|---|
| 인도장소와 지급장소를 모두 정함 | 약정한 곳 | 약정한 곳 |
| 인도장소만 정하고 맞바꾸기로 함 | 약정한 곳 | 인도장소 (제586조) |
| 둘 다 정하지 않음 | 계약 당시 기계가 있던 곳 (제467조 제1항) | 맞바꾸는 경우 그 인도장소 |
| 대금만 따로 나중에 치르기로 함 | 위 기준에 따름 | 판 쪽의 현주소나 영업소 (제467조 제2항) |
요즘은 계좌이체가 대부분이라 장소가 무슨 의미냐고 묻는 분도 계십니다. 장소는 누가 어디로 가야 이행을 제공한 것이 되는지를 가릅니다. 기계를 공장에 준비해 두고 산 쪽을 기다린 판 쪽은 할 일을 한 셈이 됩니다.
계약서 비용과 감정료는 누가 내나
반반입니다.
제566조는 매매계약에 관한 비용을 당사자 쌍방이 균분하여 부담한다고 정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데 든 대서료, 계약 조건을 정하려고 함께 맡긴 감정이나 측량 비용처럼 계약을 맺는 데 들어간 돈이 여기에 들어간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행에 드는 비용은 다른 줄입니다. 제473조는 변제비용을 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합니다. 기계를 넘길 의무를 진 쪽이 판 쪽이므로 해체와 상차 비용은 판 쪽 몫이 되고, 잔금을 보낼 의무를 진 산 쪽은 송금 수수료를 냅니다. 상대가 주소를 옮겨 비용이 늘었다면 그 늘어난 부분은 옮긴 쪽이 집니다.
계약 비용과 변제비용
계약 비용은 계약을 성립시키는 데 든 돈이고 양쪽이 나눕니다. 변제비용은 각자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든 돈이고 그 의무를 진 사람이 냅니다. 둘 다 계약서에 다르게 정하면 그 약정이 앞섭니다.
넘기기 전 기계로 번 돈과 잔금 이자는 어떻게 되나
판 쪽이 잔금일까지 그 프레스를 다른 업체에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았다고 해 봅시다. 제587조 첫 문장은 매매계약 뒤에도 인도하지 않은 목적물에서 생긴 과실은 매도인에게 속한다고 정합니다. 그 사용료를 산 쪽이 달라고 할 근거는 약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산 쪽은 목적물을 인도받은 날부터 대금의 이자를 지급하여야 하지만, 대금 지급에 기한이 있으면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잔금일을 적어 둔 이 사안에서는 기계를 일찍 받았더라도 10월 30일 전에 이자를 물 이유가 없습니다.
상대가 그날 나타나지 않으면 무엇부터 하나
먼저 내 쪽 준비를 갖춰 두는 것이 순서입니다. 변제는 채무 내용에 맞게 실제로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고, 상대가 미리 수령을 거절했다면 준비를 마쳤다고 알리고 받아 가라고 최고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공한 때부터 채무불이행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 잔금을 인출해 두거나 송금 준비가 끝났음을 보여 주는 자료를 남깁니다.
- 약속 장소에 나가 기다린 사실을 사진이나 문자로 기록합니다.
- 상당한 기간을 정해 이행을 최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냅니다.
- 그 기간에도 이행이 없으면 계약 해제를 통지하고 손해를 정리합니다.
상대가 자기 몫을 내놓지 않는 동안에는 내 몫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데, 이것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입니다. 판 쪽이 기계를 준비하지 않은 채 잔금부터 요구한다면 산 쪽은 이 항변으로 버틸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한 줄씩 더 적을 것
· 인도 날짜와 인도 장소
· 잔금 지급 방법과 계좌, 지급 시점
· 해체·운반·설치 비용을 누가 내는지
· 감정료와 대서료 분담 비율
정리
잔금 날짜만 적힌 매매에서는 인도도 같은 날로 추정되고, 돈과 물건이 맞바뀝니다. 대금은 인도하는 장소에서 치르는 것이 원칙이며 계약서 비용은 반씩 나눕니다. 운반비나 송금 수수료처럼 의무를 이행하는 데 드는 돈은 그 의무를 진 쪽이 냅니다. 계약서가 침묵해도 이 기본값은 그대로 작동합니다.
이 기본값은 모두 약정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미 다툼이 생겼다면 오간 문자와 이메일 속에 다른 약정의 흔적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해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최고와 통지의 순서를 맞추는 단계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387조, 제460조, 제461조, 제467조, 제473조, 제536조, 제544조, 제566조, 제568조, 제585조, 제586조, 제58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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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잔금 날짜도 인도 날짜도 안 적었다면 어떻게 되나요?
기한이 없는 채무는 이행 청구를 받은 때부터 지체 책임이 생깁니다. 상대에게 날짜를 정해 이행을 요구하는 통지를 먼저 보내고, 그 날짜에 내 쪽 준비를 갖춰 두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판 쪽이 잔금을 먼저 보내라고 고집합니다.
특별한 약정이 없다면 대금 지급과 인도는 동시에 이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먼저 보내기로 합의하지 않았다면 기계를 넘길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뒤에 지급하겠다고 서면으로 답해 두십시오.
부동산 매매에도 같은 규정이 적용되나요?
제566조, 제585조, 제586조는 매매 일반에 적용되므로 부동산도 같습니다. 다만 부동산은 소유권 이전등기 서류를 넘기는 것이 핵심 이행이라 실제 거래에서는 중개사무소나 법무사 사무실에서 서류와 잔금을 맞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서 작성비를 상대가 전부 냈는데 절반을 돌려줘야 하나요?
따로 정한 바가 없다면 계약 비용은 반씩 부담하므로 절반을 정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한쪽이 부담하기로 말로라도 합의했다면 그 약정이 앞서므로 당시 대화 기록을 확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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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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