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조카에게 이모부가 설 명절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이번에 최종 합격하면 내가 타던 SUV를 너에게 넘겨주겠다고. 다음 날 같은 내용을 메시지로도 보냈습니다. 그런데 최종 발표를 2주 앞둔 날, 이모부는 그 차를 중고차 매매상에게 1,800만원에 팔았습니다. 발표 날 조카는 합격했습니다. 아직 합격하지 않았으니 아무 권리도 없었다는 이모부의 말이 맞는지, 조건이 붙은 약속을 민법이 어떻게 다루는지 짚어 봅니다.
합격하면 준다는 말은 어떤 약속인가
대가 없이 재산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이므로 민법 제554조의 증여입니다. 이모부가 주겠다고 하고 조카가 고맙다고 받아들이면 성립합니다.
여기에 합격이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약속의 효력을 걸어 둔 것이어서, 그 일이 일어나야 비로소 효력이 생기는 정지조건입니다. 제147조 제1항은 이런 법률행위가 조건이 성취한 때부터 효력이 생긴다고 정합니다. 발표 전까지 조카가 차를 달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모부의 말은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발표 전에는 정말 아무 권리도 없나
그렇지 않습니다. 효력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는 것과 보호받을 지위가 없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148조는 조건이 붙은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조건의 성부가 정해지지 않은 동안 조건이 이뤄지면 생길 상대방의 이익을 해하지 못한다고 정합니다. 약속한 사람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진다는 뜻입니다.
제149조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조건의 성취가 미정한 권리의무도 일반 규정에 따라 처분, 상속, 보존하거나 담보로 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발표 전에 이모부가 세상을 떠났다면 그 약속은 사라지지 않고 상속인에게 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과를 모르는 상태의 권리라도 재산처럼 다뤄진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조건부 권리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에 효력이 걸린 권리입니다. 그 사실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행을 청구할 수 없지만, 상대방이 그 실현을 가로막거나 목적물을 없애는 행위로부터는 지금 당장 보호를 받습니다.
발표 전에 차를 판 것은 그 의무를 어긴 것인가
약속의 대상은 다른 차가 아니라 이모부가 타던 바로 그 SUV였습니다. 그 차를 남에게 팔아 넘기면 합격하더라도 약속을 지킬 길이 없어집니다. 조건이 이뤄질 때 조카가 얻었을 이익을 정면으로 해치는 행동이어서, 제148조가 금지하는 조건부 권리의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쉽습니다.
조카가 합격한 순간 증여는 효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넘겨줄 차가 이미 없으니 이행할 수 없게 된 채무가 남습니다. 이모부가 스스로 판 것이어서 제390조가 말하는 고의나 과실도 어렵지 않게 인정됩니다. 조카가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차를 대신한 손해배상, 대개 발표 무렵 그 차의 시세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매매상에게서 차를 되찾아 오라고 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매매상은 이모부와 정상적으로 거래한 제3자이기 때문입니다.
증여라는 점이 결론을 흔드는 이유
여기서 변수가 하나 생깁니다. 제555조는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각 당사자가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말로만 한 증여는 넘겨주기 전까지 언제든 물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558조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해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명절 자리에서 한 말뿐이었다면 이모부는 이 조문을 들어 약속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해제가 되면 처음부터 지킬 의무가 없던 약속이 되어 배상 문제도 함께 힘을 잃습니다. 메시지가 남아 있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메시지가 서면에 해당하는지는 다툼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고, 차종과 조건, 주겠다는 뜻이 얼마나 분명하게 적혀 있는지가 판단을 좌우합니다.
| 약속이 남은 모습 | 이모부가 약속을 거둘 수 있나 | 차를 판 뒤 조카가 할 수 있는 것 |
|---|---|---|
| 가족 모임에서 한 말뿐 | 서면이 아니므로 해제 가능 | 해제 전이라면 배상 문제가 남지만, 해제하면 다투기 어려움 |
| 차종과 조건을 적은 메시지 | 서면에 해당하는지부터 다툼 | 메시지 내용이 구체적일수록 배상 주장에 힘이 실림 |
| 서명한 각서나 증여 계약서 | 서면 증여라 마음대로 해제 불가 | 합격 뒤 차 값에 해당하는 손해배상 청구 |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해 둘 수 있나
가족 사이의 약속이라 법적 수단을 먼저 떠올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약속의 형태를 단단히 해 두는 것만으로 많은 다툼을 막을 수 있습니다.
- 약속한 내용을 차종, 차량번호, 조건, 넘겨줄 시기까지 적어 서로 서명한 짧은 문서로 남깁니다.
- 조건이 무엇인지 분명히 적습니다. 1차 합격인지 최종 합격인지, 발표일이 언제인지에 따라 다툼이 생깁니다.
- 약속한 쪽이 차를 처분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그 차를 두고 처분금지가처분 같은 보전처분이 가능한지 검토합니다. 제149조가 조건부 권리의 보존을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약속한 쪽이라면 사정이 바뀌어 차를 팔아야 할 때 먼저 그 뜻을 알리고 약속을 정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아무 말 없이 팔고 나서 합격 소식을 들으면 그때는 늦습니다. 배상 다툼만 남습니다.
정리
합격하면 차를 주겠다는 약속은 합격이라는 정지조건이 붙은 증여입니다. 발표 전에는 차를 달라고 할 수 없지만, 약속한 사람도 그 사이 차를 팔아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했다면 합격 뒤 차 값에 해당하는 배상 문제가 남습니다.
다만 말로만 한 증여는 해제할 수 있어서, 약속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가 실제 결론을 가릅니다. 메시지와 녹음, 증인이 있다면 정리해 두고 변호사와 함께 청구가 가능한지부터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47조, 제148조, 제149조, 제390조, 제554조, 제555조, 제558조 · 민사집행법 제300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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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불합격하면 어떻게 되나요?
정지조건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정되므로 증여는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미 차를 팔았더라도 조카가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모부가 다른 차를 사 주겠다고 하면 받아들여야 하나요?
약속의 대상은 특정한 그 차였으므로 다른 차를 받을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배상 금액을 두고 다투기보다 비슷한 가치의 차나 금전으로 합의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격 발표 직전에 이모부가 돌아가셨습니다.
조건부 권리와 의무도 상속되므로, 합격하면 이모부의 상속인들이 약속을 이행할 의무를 이어받습니다. 다만 서면이 없는 증여라면 상속인들도 해제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메시지 한 줄도 서면으로 인정되나요?
서면 증여로 볼지는 그 문서에 증여하겠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나는지로 판단합니다. 무엇을 언제 어떤 조건으로 주겠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을수록 서면으로 인정받을 여지가 커지지만, 사안마다 판단이 갈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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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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