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 필지에서 지하 2층 터파기가 시작된 지 3주째, 4층짜리 상가 건물 주인은 1층 계단참 벽에서 머리카락 같은 금을 발견했습니다. 일주일 뒤 그 금은 손가락 마디만큼 벌어졌고, 시공사 현장소장은 우리 공사와 무관하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다음 주에는 흙막이를 더 깊이 박는다고 합니다. 법원에 공사를 멈춰 달라는 가처분을 내면, 시공사를 불러 말을 듣는 동안 공사는 계속될 텐데 그 사이 건물이 버틸지가 걱정입니다. 상대를 부르지 않고 결정이 나올 수 있는지가 이 글의 질문입니다.
공사를 멈추게 하는 가처분은 어떤 종류인가
민사집행법 제300조는 가처분을 두 갈래로 나눕니다. 제1항은 다툼의 대상이 되는 물건의 현상이 바뀌어 나중에 권리를 실행하기 어려워질 때 쓰는 것입니다. 제2항은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대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입니다.
공사중지 가처분은 뒤쪽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건물 소유권에 기초한 방해 예방을 주장하며,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지 말라고 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제2항 후문은 이런 가처분을 계속하는 권리관계에 끼칠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때 하도록 요건을 따로 붙여 두었습니다.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
본안 소송에서 결론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동안,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잠정적으로 정해 두는 가처분입니다. 공사 중지, 출입 금지, 직무집행 정지처럼 상대방의 행동을 직접 묶는 경우가 많아 상대에게 미치는 타격이 큽니다.
원칙은 상대를 불러 듣는 것이다
제304조 본문이 이 가처분에 절차 요건을 하나 더 얹습니다. 법원은 재판에 앞서 변론기일 또는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열어야 합니다.
가압류나 제1항의 가처분은 상대가 모르게 진행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미리 알리면 재산을 빼돌리거나 물건을 처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시지위 가처분은 사정이 다릅니다. 공사가 멈추면 시공사는 인력과 장비를 놀리고 공정이 통째로 밀립니다. 그만큼 큰 결과를 한쪽 말만 듣고 내리지 말라는 것이 이 조문의 취지입니다.
그래서 신청서를 내면 대개 심문기일이 잡히고 시공사에도 통지가 가며, 시공사는 그 자리에서 공사와 균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거나 이미 보강 조치를 했다고 다툽니다.
예외는 어떤 경우에 열리나
제304조 단서가 출구입니다. 기일을 열어 심리하면 가처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면 기일 없이 재판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이 단서를 쓰는 데 신중한 이유도 같은 곳에 있어서, 상대의 말을 한 번도 듣지 않고 공사를 세웠는데 나중에 균열이 공사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 사이 멈춘 공정의 손해는 쉽게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핵심은 시간입니다. 기일을 잡고 통지하고 양쪽 말을 듣는 사이에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기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사례라면 다음 주로 예정된 흙막이 추가 시공이 그 지점입니다. 벌어진 균열이 그 공정 뒤에 구조 문제로 번질 염려가 있다는 점을 소명할 수 있다면 단서를 주장할 근거가 생깁니다.
반대로 손해가 금전 배상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거나 공정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법원은 원칙대로 기일을 엽니다. 단서를 주장한다고 곧바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서를 주장하려면 무엇을 내야 하나
말로 급하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를 서류로 보여 줘야 합니다.
- 균열 부위를 날짜별로 찍은 사진과 균열 폭을 잰 기록
- 구조기술사나 건축사의 의견서, 안전진단 결과
- 시공사의 공정표나 현장 안내문에 적힌 다음 공정과 그 시작일
- 시공사와 관할 구청에 보낸 민원, 내용증명과 그 회신
- 세입자의 피해 호소나 영업 지장을 보여 주는 자료
급박한 경우에는 제312조에 따라 재판장이 단독으로 이 편의 신청에 대한 재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합의부 사건이라도 재판부 전원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쓰이는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법원은 어떤 내용을 명할 수 있나
신청인이 쓴 문구 그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305조 제1항은 법원이 신청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처분을 직권으로 정한다고 적었고, 제2항은 상대방에게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도록 명할 수 있다고 예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면 공사 중지 대신 특정 공정만 멈추게 하거나, 계측기를 설치하고 일정 수치를 넘으면 중단하라는 식의 결정이 나오기도 합니다. 신청 취지를 짤 때 전면 중지와 부분 중지를 함께 적어 두면 법원이 고를 폭이 넓어집니다.
담보도 따라옵니다. 제301조가 가압류 절차를 준용하므로 제280조에 따라 법원은 담보를 제공하게 하고 가처분을 명할 수 있습니다. 공사 중지는 상대 손해가 크기 때문에 담보액이 적지 않게 정해질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계산해 두셔야 합니다.
상대 없이 결정이 나면 그다음은
기일 없이 결정이 나왔다고 끝난 것이 아니고, 시공사에게도 다툴 길이 열려 있습니다.
| 단계 | 신청인 쪽 | 시공사 쪽 |
|---|---|---|
| 결정 전 | 단서 사유와 급박성 소명 | 원칙상 심문기일에서 반박 |
| 결정 후 | 결정 정본으로 공사 중지 요구 | 이의신청 (가압류 이의 규정 준용) |
| 이의 심리 | 심문기일에 출석해 소명 보강 | 당사자 쌍방이 참여하는 기일에서 다툼 |
| 그 밖의 수단 | 본안 소송 진행 | 특별한 사정을 들어 담보 제공 후 취소 신청 |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제286조가 준용되어 법원은 당사자 쌍방이 참여할 수 있는 기일을 엽니다. 결국 한 번은 양쪽이 마주 앉게 되는 셈입니다. 처음에 생략했던 심문이 뒤로 미뤄질 뿐이므로, 그때 다시 버틸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제307조도 시공사 쪽 카드입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법원은 담보를 제공하게 하고 가처분을 취소할 수 있어, 시공사가 공사 지연으로 생길 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을 내세워 이 신청을 내기도 합니다. 신청인으로서는 담보액이 그 손해를 덮기에 충분한지가 다툼의 초점이 됩니다.
정리
공사중지 가처분은 대개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이어서, 원칙적으로 법원은 상대를 불러 듣고 결정합니다. 기일을 열면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급박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그 절차를 건너뛸 수 있습니다. 예외는 좁습니다.
그 사정은 신청인이 서류로 보여 줘야 하고, 결정이 나온 뒤에도 이의 절차에서 다시 다투게 됩니다. 균열 기록과 공정 일정, 전문가 의견을 얼마나 빨리 묶어 내느냐가 관건이므로 서두를수록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신청서와 소명 자료를 함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사집행법 제280조, 제283조, 제286조, 제300조, 제301조, 제304조, 제305조, 제307조, 제312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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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심문기일은 신청하고 얼마 뒤에 잡히나요?
조문에 정해진 날짜는 없고 법원 사정과 사안의 급박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급하다는 사정을 신청서 첫머리에 분명히 적고, 접수 직후 담당 재판부에 기일 지정 시기를 문의해 두십시오.
구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가처분도 따로 내야 하나요?
구청의 조치는 행정상 감독이고 공사를 멈추라는 사법상 명령과는 별개입니다. 민원으로 공사가 멈추지 않는다면 가처분을 따로 검토해야 하며, 민원 처리 경과는 오히려 급박성을 보여 주는 자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가처분 결정 뒤 시공사가 공사를 계속하면 어떻게 하나요?
부작위를 명한 가처분을 어긴 경우에는 대체집행이나 간접강제 같은 집행 방법을 검토하게 됩니다. 위반 현장을 날짜와 함께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두는 것이 우선입니다.
나중에 본안에서 지면 손해를 물어야 하나요?
가처분이 부당했던 것으로 드러나면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할 수 있고, 그때 처음에 제공한 담보가 쓰입니다. 그래서 신청 전에 균열과 공사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 줄 자료가 충분한지 냉정하게 따져 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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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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