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상가 앞 인도에서 목줄 없는 대형견 한 마리가 짖으며 달려들었습니다. 뒷걸음질 치다 몸을 틀었고, 그 바람에 옆 꽃집 앞에 내놓은 유리 진열장이 넘어가 산산이 깨졌습니다. 개 주인은 몇 걸음 뒤에서 이름만 부르고 있었습니다. 꽃집 사장은 진열장과 꽃값을 물어내라고 하고, 개 주인은 직접 깬 사람은 당신이라고 합니다. 피하려다 남의 물건을 망가뜨린 사람에게 배상 책임이 있는지, 민법 제761조가 그 경계를 긋고 있습니다.
깨뜨린 사람은 원칙대로라면 물어 줘야 하나
출발점만 보면 그렇습니다.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에게 배상 책임을 지웁니다. 진열장을 넘어뜨린 것은 분명 이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법은 손해를 끼친 모든 행위를 위법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남의 공격을 막거나 닥친 위험을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라면, 위법성이 사라지는 길을 따로 열어 두었습니다. 제761조의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입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과실을 조금 덜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요건이 갖춰지면 배상 책임 자체가 생기지 않습니다. 꽃집 사장의 청구가 처음부터 엉뚱한 사람을 향한 것이 되는 셈입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은 어떻게 갈리나
둘의 차이는 위험이 어디서 왔느냐입니다.
| 구분 | 정당방위 (제1항) | 긴급피난 (제2항) |
|---|---|---|
| 위험의 출처 | 타인의 불법행위 | 급박한 위난 (원인을 묻지 않음) |
| 이 사례에 대입하면 | 개 주인의 관리 소홀로 개가 달려든 경우 | 주인 없는 개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돌발 상황 |
| 면책의 요건 | 부득이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 | 부득이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가함 |
| 피해자의 청구 상대 | 불법행위를 한 사람 | 제1항 단서 준용, 위난의 원인 제공자 |
제1항은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자기나 제삼자의 이익을 지키려고 부득이 손해를 가한 사람은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정합니다. 개가 스스로 불법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줄 없이 개를 풀어 둔 주인의 관리 소홀은 불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제2항은 같은 규정을 급박한 위난을 피하려고 부득이 손해를 가한 경우에 준용합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피한 사람은 면책되고, 꽃집 사장은 위험을 만든 쪽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부득이'는 얼마나 엄격하게 보나
두 항 모두 부득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면책의 문턱이 여기 있습니다.
달리 피할 방법이 없었는지, 피하면서 끼친 손해가 지키려던 이익에 비해 지나치지 않았는지가 함께 검토됩니다. 개가 몇 미터 앞에서 짖기만 하고 다가오지 않았는데 굳이 진열장 쪽으로 뛰어들었다면 부득이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개가 몸에 닿을 만큼 덤벼들어 반사적으로 몸을 튼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구체적으로는 개와의 거리, 개의 크기와 행동, 몸을 피할 수 있던 다른 방향의 공간, 그리고 망가진 물건의 값이 함께 저울에 오릅니다. 좁은 인도 한쪽은 차도, 다른 쪽은 진열장이었다면 선택지가 사실상 없었다고 볼 여지가 커집니다.
실무에서는 순간의 판단을 사후에 너무 엄격하게 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이 어땠는지는 결국 영상과 목격자로 다투게 됩니다.
꽃집 사장은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
제1항 단서가 답을 줍니다. 피해자는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문장입니다. 진열장을 넘어뜨린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만든 사람에게 가라는 뜻입니다.
개 주인에게 청구할 근거는 제759조입니다. 동물의 점유자는 그 동물이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고, 제2항은 점유자에 갈음하여 동물을 보관한 자에게도 같은 책임을 지웁니다. 산책 대행 업체 직원이나 잠시 맡아 데리고 나온 지인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개 주인이 내세울 수 있는 반박은 하나입니다. 제759조 제1항 단서는 동물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보관에 상당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면한다고 정합니다. 목줄 없이 대형견을 풀어 두었다면 이 단서를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피한 사람은 개 주인에게 아무것도 못 받나
받을 수 있습니다. 넘어지며 손목을 다쳤거나 옷과 휴대폰이 상했다면, 그 손해 역시 개가 덤빈 데서 비롯된 것이어서 제759조로 개 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치료비와 수리비는 영수증과 견적서가 있어야 액수로 바뀝니다. 병원에 간 날이 사고 직후일수록 인과관계를 다툴 여지가 줄어듭니다.
다만 피한 사람에게도 잘못이 섞였다면 배상액이 줄 수 있습니다. 제763조가 불법행위에 제396조의 과실상계를 준용하기 때문입니다. 개를 보고 일부러 자극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 몫만큼 깎일 수 있습니다.
주의
개 주인이 현장을 떠나 버리면 꽃집 사장도, 피한 사람도 청구할 상대를 잃습니다. 사고 직후 개 주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 두고, 거부하면 경찰에 신고해 신원을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상가 CCTV는 보존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으니 그날 바로 열람이나 보존을 요청하십시오.
현장에서 무엇을 남겨야 하나
이 사건의 쟁점은 대부분 사실관계입니다. 개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목줄이 있었는지, 다른 길이 있었는지.
- 개 주인의 이름, 연락처, 개의 종류와 크기를 기록합니다.
- 주변 상가와 차량 블랙박스, 방범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고 영상 보존을 바로 요청합니다.
- 목격자의 연락처를 받고, 가능하면 그날 본 내용을 짧게 적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 깨진 진열장과 꽃, 다친 부위를 사진으로 남기고 수리 견적서와 진료 기록을 모읍니다.
꽃집 사장 입장에서는 진열장 값과 버려진 꽃값, 정리하느라 문을 닫은 시간의 손해가 청구 항목이 됩니다. 영업 손실은 평소 매출을 보여 줄 자료가 있어야 인정받기 쉽습니다.
나중에 꽃집과 개 주인 사이의 다툼에 증인으로 불려 갈 수도 있으니 피한 사람도 자기 기록을 따로 챙겨 두십시오.
정리
덤비는 개를 피하다 남의 물건을 깨뜨렸다면, 그 행동이 부득이했다고 인정되는 한 피한 사람은 배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개 주인의 관리 소홀이 원인이라면 정당방위, 원인을 알 수 없는 위난이라면 긴급피난의 틀로 봅니다. 어느 틀이든 결과는 비슷합니다.
손해를 입은 가게 주인은 위험을 만든 개 주인이나 보관자에게 청구합니다. 결국 현장 기록이 결론을 좌우하므로, 개 주인과 연락이 끊기거나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라면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청구 상대와 순서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396조, 제750조, 제759조, 제761조, 제763조
본 글이 사건의 큰 그림을 그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상담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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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개 주인이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물었는지와 관계없이 짖으며 달려든 행동이 위험을 만들었는지가 쟁점입니다. 개의 크기와 거리, 행인이 느꼈을 위협을 영상과 목격자로 보여 주면 그 주장은 힘을 잃습니다.
꽃집 사장이 저에게 먼저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소송에서 부득이한 피난이었다는 점을 주장해 면책을 다툴 수 있습니다. 개 주인을 상대로 함께 책임을 묻는 방법도 있으므로 소장을 받으면 바로 답변 기한을 확인하고 대응을 준비하십시오.
주인 없는 떠돌이 개였다면 가게 손해는 누가 메우나요?
위난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없으면 가게 주인이 청구할 상대가 마땅치 않을 수 있습니다. 가게가 가입한 영업배상책임보험이나 화재보험 특약으로 보상되는지 먼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개를 쫓으려고 우산을 휘둘러 개가 다쳤습니다.
개도 주인의 재산이므로 다치게 한 부분이 문제 될 수 있지만, 덤벼드는 개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부득이하게 한 행동이라면 같은 조문으로 면책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공격이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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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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