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회사 현장소장으로 일하며 자재상에 타일과 접착제를 주문했습니다. 급한 현장이라 발주서 맨 아래에 제 이름을 적고 개인 도장을 찍었을 뿐 회사명은 쓰지 않았습니다. 넉 달 뒤 회사가 대금을 미루자 자재상은 제 집 주소로 지급명령을 보냈습니다. 회사 일로 한 주문인데 왜 내가 갚아야 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민법은 이 경우 누구의 계약으로 볼지를 두 개의 조문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회사 일을 하면서 내 이름만 적으면 누구의 계약이 되나
출발점은 민법 제114조 제1항입니다. 대리인이 권한 안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고 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효력이 생깁니다. 회사를 대신해 주문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면 그 계약은 처음부터 회사의 것이 됩니다.
문제는 그 표시를 빠뜨렸을 때입니다. 제115조 본문은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않은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자기를 위한 것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본다는 말은 법이 그렇게 취급한다는 뜻이라서, 속으로는 회사 일이었다는 사정만으로 뒤집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발주서에 개인 이름만 남았다면 일단은 담당자 본인의 계약으로 출발합니다.
상대가 회사 일인 줄 알았다면 결론이 바뀌나
바뀝니다.
제115조 단서는 상대방이 대리인으로서 한 것임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제114조 제1항을 준용한다고 정합니다. 표시가 없었더라도 상대가 사정을 알고 있었다면 표시한 것과 같이 다룬다는 뜻입니다. 그때 계약의 당사자는 회사가 되고 담당자 개인은 빠집니다.
결국 다툼은 상대가 무엇을 알 수 있었느냐로 옮겨 갑니다. 이 사정은 계약 당시를 기준으로 보며, 증명은 회사 계약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준비해야 합니다.
방향을 바꿔도 같은 원리가 작동합니다. 제114조 제2항은 대리인에게 대한 제3자의 의사표시에도 제1항을 준용합니다. 자재상이 하자가 있으니 대금을 깎겠다거나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통보를 담당자에게 보냈다면, 회사 계약으로 인정되는 한 그 통보는 회사가 받은 것으로 다뤄집니다. 담당자가 이런 문자를 받았다면 혼자 쥐고 있지 말고 곧바로 회사에 전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알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보여 주나
한 장의 결정적 서류보다 여러 정황이 모여 판단됩니다. 거래 과정에서 남은 자료를 아래 기준으로 분류해 보십시오.
| 자료 | 회사 거래로 읽힐 수 있는 모습 |
|---|---|
| 명함과 이메일 | 회사명과 직함이 적힌 명함을 건넸고, 회사 도메인 메일로 견적을 주고받음 |
| 납품 장소 | 자재가 담당자 집이 아닌 회사가 맡은 공사 현장으로 들어감 |
| 세금계산서 | 공급받는 자가 회사 사업자등록번호로 발행됨 |
| 대금 지급 | 이전 거래 대금이 회사 계좌에서 나갔음 |
| 거래 이력 | 같은 자재상과 회사 이름으로 거래한 기록이 이미 있음 |
세금계산서와 지급 계좌는 특히 무게가 큽니다. 자재상이 회사 앞으로 계산서를 끊고 회사 돈을 받아 온 사이라면 담당자 개인과 거래한다고 믿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현금으로 주고받았고 계산서도 발행하지 않았다면 개인 거래라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회사끼리의 거래라면 다른 규정도 보나
봐야 합니다. 거래가 상행위에 해당하면 상법이 민법보다 먼저 적용되는데, 상법은 상행위의 대리인이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않아도 그 행위가 본인에게 효력이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영업으로 자재를 사들인 거래라면 민법 제115조보다 회사 쪽에 효력을 붙이기가 수월합니다.
다만 같은 규정은 상대방이 본인을 위한 것임을 알지 못한 경우 대리인에게도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단서를 두고 있습니다. 담당자가 완전히 빠져나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거래가 상행위인지,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알았는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애초에 그 주문을 할 권한이 없었다면
회사가 그런 주문을 맡긴 적이 없다고 나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제135조 제1항은 대리인으로서 계약을 맺은 사람이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본인의 추인도 받지 못하면,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거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정합니다. 회사 이름을 밝혔더라도 권한이 없었다면 결국 담당자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제2항은 상대방이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이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지급명령을 받은 담당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회사 일이었다는 정황, 그리고 회사가 그 일을 맡겼다는 근거입니다.
청구서를 받은 담당자는 지금 무엇부터 하나
- 지급명령이라면 정본에 안내된 이의 기간부터 확인하고 그 안에 이의신청서를 냅니다. 기간을 넘기면 지급명령이 확정되어 다투기 어려워집니다.
- 회사가 그 공사를 맡았다는 계약서, 현장 배치 지시, 업무 분장표처럼 권한을 보여 주는 자료를 회사에서 받아 둡니다.
- 자재상과 주고받은 문자, 이메일, 견적서, 세금계산서, 입금 내역을 날짜순으로 정리합니다.
- 회사에 서면으로 대금 처리를 요청하고 회신을 남깁니다.
이미 개인 돈으로 갚아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회사 일을 처리하다 떠안은 빚이라면 회사 내부에서 정산을 요구할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법 제688조는 위임받은 사람이 사무 처리에 필요한 채무를 부담한 때 위임한 쪽에 대신 변제하게 할 수 있고, 필요비를 지출했으면 지출한 날 이후의 이자까지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고용관계에 이 조문을 그대로 끌어올 수 있는지는 근로계약과 업무 지시의 내용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으니, 입금 영수증과 업무 지시 기록을 함께 보관하십시오.
주의
자재상이 찾아와 일단 개인 명의로 지불각서를 써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서류에 서명하면 처음 계약이 누구의 것이었는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채무를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회사 대표의 확인 없이 개인 명의로 서명하지 마십시오.
정리
회사를 위해 계약하면서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면 민법은 담당자 자신의 계약으로 봅니다. 상대가 회사 일인 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회사의 계약으로 바뀌고, 상행위라면 상법 규정이 회사 쪽 효력을 더 넓게 인정합니다. 권한 자체가 없었다면 이름을 밝혔더라도 무권대리인 책임이 남습니다.
결론은 결국 거래 당시의 자료가 정합니다. 청구서를 받았다면 기간이 짧은 절차부터 대응하시고, 정황 자료를 모은 뒤 변호사와 함께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다툴지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14조, 제115조, 제135조, 제688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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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명함은 줬지만 계약서에는 개인 이름만 있습니다.
명함은 상대가 회사 일인 줄 알 수 있었다는 정황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납품 장소, 세금계산서, 대금 지급 계좌 같은 다른 자료와 함께 제출하는 편이 좋습니다.
회사가 폐업해서 회사에 청구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계약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회사의 지급 능력과 상관없이 정해집니다. 회사의 계약으로 인정되면 담당자 개인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자재상은 회사나 그 청산 절차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회사가 대신 갚아 주겠다고 하는데 문서로 받아야 하나요?
받아 두십시오. 회사가 그 거래를 자기 것으로 인정한다는 서면은 대리권과 추인을 함께 보여 주는 자료가 됩니다. 대표이사 명의와 회사 인감이 찍힌 확인서가 가장 확실합니다.
제가 받은 지급명령에 이의하면 소송이 되나요?
이의신청을 하면 지급명령은 효력을 잃고 통상의 소송 절차로 넘어갑니다. 그 소송에서 회사 계약이라는 점과 상대가 이를 알 수 있었다는 점을 다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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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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