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에 있는 밭을 팔아 달라며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건넸습니다. 3개월 뒤 받아 본 매매계약서에는 친구가 아닌 낯선 이름이 대리인 칸에 적혀 있었습니다. 친구는 일이 몰려 아는 후배에게 넘겼다고만 합니다. 값도 기대했던 1억 2천만원보다 1,800만원이나 낮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따져 볼 것은 두 갈래입니다. 그 후배가 맺은 계약이 나를 묶는지, 그리고 일을 넘긴 친구에게 무엇을 물을 수 있는지입니다.
맡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세워도 되나
원칙은 안 됩니다.
위임장이나 계약처럼 본인의 뜻으로 대리권을 준 경우를 임의대리라고 합니다. 민법 제120조는 이런 대리인이 복대리인을 고를 수 있는 길을 둘로 좁혀 두었습니다. 본인의 승낙이 있었거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었을 때뿐입니다.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대리인에게는 다른 사람을 세울 권한 자체가 없습니다.
제동을 걸어 둔 까닭은 어렵지 않습니다. 본인은 그 친구의 판단력과 성실함을 보고 일을 맡겼습니다. 친구가 고를 누군가까지 믿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복대리인
대리인이 자기 이름으로 고르되, 대리인 자신이 아니라 본인을 대리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대리인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본인의 대리인이라는 점이 핵심이고, 계약의 효과도 대리인을 거치지 않고 본인에게 곧바로 돌아옵니다.
승낙이나 부득이한 사유는 어떻게 가려지나
조문은 승낙의 형식을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말이나 문자 메시지로 괜찮다고 했다면 그것도 승낙입니다. 다만 나중에 다툼이 생기면 그런 말을 했는지부터 싸우게 되므로 기록이 남은 승낙이 훨씬 유리합니다. 시중 위임장 양식 가운데에는 복대리인 선임 권한을 준다는 문구가 미리 인쇄된 것도 있어서, 서명하기 전에 그 줄을 지울지 남길지 정해 두어야 합니다.
부득이한 사유는 조문에 예시가 없습니다. 대리인이 갑자기 입원해 정해진 날까지 처리할 수 없는데 본인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면 가깝습니다. 승낙을 받을 여유가 없고, 일을 미루면 본인이 손해를 보는 경우입니다.
일이 바빴다는 사정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 정도라면 본인에게 전화 한 통 걸어 물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맺은 계약에 나는 묶이나
적법하게 세운 복대리인이라면 묶입니다. 제123조 제1항은 복대리인이 그 권한 안에서 본인을 대리한다고 하고, 제2항은 복대리인이 본인이나 제3자에 대하여 대리인과 동일한 권리의무를 가진다고 합니다. 매매대금을 받을 권리도, 등기를 넘겨줄 의무도 본인에게 생깁니다.
승낙도 급박한 사정도 없이 세운 사람이라면 사정이 바뀝니다. 그 사람에게는 본인을 대리할 근거가 없으므로 계약은 권한 없는 사람이 맺은 대리행위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본인에게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 후배가 위임장 원본과 인감증명서를 들고 나타났다면, 매수인은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표현대리 다툼으로 번질 수 있는 지점이라 서류가 누구 손에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받아들일지는 본인이 정합니다.
일을 넘긴 대리인에게는 무엇을 물을 수 있나
적법하게 넘겼더라도 처음 대리인이 빠지지는 않습니다. 제121조 제1항은 대리인이 복대리인을 선임한 때 본인에게 선임감독에 관한 책임을 진다고 정합니다. 고를 때 제대로 골랐는지, 맡긴 뒤 제대로 지켜봤는지가 따로 물어집니다.
땅 거래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스무 살 대학생을 세웠다면 고른 단계에서 흠이 있습니다. 계약 직전에 가격 조건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면 지켜본 단계에서 흠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겹치는 사안도 드물지 않습니다.
승낙 없이 넘긴 경우라면 이야기가 더 단순해집니다.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일을 한 것이므로, 대리권을 준 바탕이 된 위임계약을 어긴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청구를 준비할 때는 다음 자료를 먼저 모아 두십시오.
- 위임장 사본과 거기에 적힌 권한의 범위, 매매 하한가 같은 조건
- 대리인이 후배에게 일을 넘기며 주고받은 메시지나 통화 기록
- 체결된 매매계약서와 같은 시기 인근 토지의 실거래가 자료
- 본인이 대리인에게 따로 지시한 내용이 있다면 그 기록
내가 그 사람을 지목했다면 책임은 줄어드나
크게 줄어듭니다. 제121조 제2항은 대리인이 본인의 지명에 따라 복대리인을 세운 경우, 그 사람이 부적임하거나 불성실하다는 것을 알고도 본인에게 알리거나 해임하는 일을 게을리한 때가 아니면 책임이 없다고 정합니다.
내 조카에게 맡기라고 한 쪽이 본인이라면 사람을 고른 책임은 본인에게 돌아갑니다. 대리인에게 남는 일은 문제를 알게 됐을 때 알리는 것과 내보내는 것, 두 가지입니다. 조카가 계약금 가운데 500만원을 따로 챙긴 사실을 대리인이 알고도 입을 다물었다면 그때 비로소 책임이 생깁니다.
지명은 편하지만 양날입니다. 사람을 정해 줄 때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가격 같은 한도를 위임장에 함께 적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부모나 후견인이 대리인이라면 기준이 다른가
다릅니다. 법률이 정해 준 대리인에 대해서는 제122조가 따로 있습니다. 법정대리인은 그 책임으로 복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고, 부득이한 사유로 선임한 때에는 제121조 제1항의 선임감독 책임만 집니다. 본인이 고른 사람이 아니고 그만둘 수도 없는 자리이니, 넘길 길은 넓게 열되 책임은 무겁게 지운 구조입니다.
| 대리인의 종류 | 복대리인을 세울 수 있는 때 | 처음 대리인이 지는 책임 |
|---|---|---|
| 임의대리인 | 본인이 승낙했거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 선임과 감독에 관한 책임 |
| 임의대리인 (본인 지명) | 본인이 사람을 정해 주었을 때 | 부적임·불성실을 알고도 알리거나 해임하지 않은 때만 |
| 법정대리인 | 언제든 자기 책임으로 | 원칙은 넓게, 부득이한 사유면 선임·감독 책임으로 한정 |
| 승낙 없이 세운 경우 | 세울 권한 없음 | 복대리권이 없어 계약 효력부터 다툼 |
표의 마지막 줄이 실제 분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합니다. 효력 문제와 책임 문제가 한꺼번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정리
맡긴 일이 낯선 사람 손에서 처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순서를 지켜 움직이는 편이 낫습니다.
- 위임장에 복대리인 선임 권한이 적혀 있었는지, 따로 승낙한 기록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승낙이 없었다면 그 계약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를 정하고, 그 뜻을 매수인에게 분명히 알립니다.
- 위임장 원본과 인감증명서가 누구 손에 있었는지 확인해 표현대리 주장에 대비합니다.
- 처음 대리인에게 선임과 감독에 관한 책임, 또는 위임계약 위반 책임을 묻습니다.
계약을 받아들이는 순간 되돌리기 어려워지므로, 매수인에게 답하기 전에 변호사와 함께 서류부터 맞춰 보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민법 제120조, 제121조, 제122조, 제123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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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위임장에 복대리인 선임 권한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못 보고 서명했습니다.
서명한 이상 그 문구도 위임 내용으로 읽힐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대리인이 그 권한으로 세운 사람에게도 처음 대리인은 선임과 감독에 관한 책임을 지므로, 어떤 사람을 어떻게 골랐는지를 따져 볼 수 있습니다.
후배가 맺은 계약이 시세보다 크게 낮습니다. 계약을 무를 수 있나요?
승낙 없이 세운 사람이 맺은 계약이라면 본인이 받아들이지 않는 한 효력이 미치지 않는 쪽이 출발점입니다. 다만 상대방이 권한을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어 서류의 흐름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친구가 입원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려면 본인의 승낙을 받을 여유도 없었고 일을 미루면 본인이 손해를 볼 상황이었어야 합니다. 입원 기간과 처리 기한, 그 사이 본인에게 연락할 수 있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복대리인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도 있나요?
복대리인은 본인에 대하여 대리인과 같은 권리의무를 가지므로, 맡은 일을 처리하면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복대리인에게도 직접 따질 수 있습니다. 처음 대리인과 복대리인 중 누구에게 무엇을 청구할지는 증거 상황을 보고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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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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